환절기의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새 가을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이 바람은 따스했던 여름의 끝자락을 쓸어버리며, 가을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용히 전한다. 하늘에는 높고 푸른 구름들이 자리하고, 가끔 햇살이 그 사이를 스며들어 땅을 비춘다. 그 햇살조차도 여름의 그것과는 다르게 눈을 찔러주는 것이 아닌, 포근한 따스함을 주는 것 같다.
늦은 점심시간, 창가에 앉아서 한잔의 홍차를 우려내려한다. 찻잎들이 뜨거운 물 속에서 천천히 펼쳐지면서 갈색의 물감이 물속으로 번져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얼마나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한가로운 시간을 갖게 될지 몰랐다.
찻잔에 담긴 홍차의 향기는 짙고 달콤하다. 입에 닿는 첫 모금은 마치 가을의 깊어가는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그 뜨거운 맛 속에 숨어있는 달콤한 여운, 그리고 약간의 쌉싸름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외부의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창 밖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리고 내 앞의 찻잔에서 오르는 연기. 모든 것이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환절기의 바람과 함께, 찻잔의 홍차는 가을의 따스함과 정취를 전해준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며, 나는 천천히 두 번째 모금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