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과 함께한 어느 비오는 날

책

비는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가끔 크게 소리를 내며, 때로는 부드럽게, 마치 약속된 대로 내려와 재촉하지 않는다. 바깥 세상과의 경계가 두꺼워진 것 같아 편안했다. 그리하여 그 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 오래 전부터 읽어보려고 했던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의 그 감각은 매번 특별하다. 책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는 다르게 느껴진다. 비의 소리와 함께, 그 이야기는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책의 주인공은 나, 그리고 비가 되었다. 비는 그 책의 배경 음악이 되어주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흐림과 물방울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 흐림 속에서도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비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그 비가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그 비는 선물이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나만의 시간을 선물해 준 비였다.

 

책 속 이야기는 점점 더 깊어지면서 나를 그 안으로 끌어들였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나는 완전히 그 속에 빠져들었다. 비는 내 마음과 함께 무거워지고, 때로는 부드러워지면서 그 감정의 파도를 만들었다.

 

비가 그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마치 비와 책이 나를 위해 준비한 완벽한 무대였다. 책을 닫고, 창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세상은 다시 밝아졌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 그 책과 비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그날, 비와 책은 나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어떤 날은 바쁘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런 날들 중에서도 이런 특별한 순간이 내게 주어진다는 것에 감사했다. 비오는 날, 그리고 책 한 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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